문창후 고운 시조(최치원)의 5세손 선지(善之)의 직계인 고려 문과 참판을 지낸 홍재(弘載)의 차남입니다. 이분의 휘는 예(汭), 고려 공민왕 22년(1373)에 경주 황오리에서 태어나셨고, 경주 최씨 27개파 중에서 큰 파중에 속하는 사성공파의 파시조가 되십니다. 정무공 잠와선생은 이분의 6세손입니다.
이 분의 형님(최호, 崔灝)은 정랑공파, 동생(최한, 崔漢)은 송오공파의 파조가 됩니다.
스물 한살이 되던 조선 개국 2년 (1393)에 치뤄진 조선 최초의 과거시험에 문과 급제했습니다. 주서(정7품), 선공감정(정3품 오늘날 건설부차관), 병조좌랑(兵曹佐郞), 면천군(沔川郡, 충남 당진) 군수, 성균관 사성(成均館 司成) 등 내외 관직을 두루 지냈습니다. 청렴한 관리로 명성이 자자해서 청백리로 녹선되셨습니다.
세종 16年 甲寅年(1434)에 향년 62세로 돌아가셨고, 묘소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서면 활천(活川)리 준주봉산 남쪽 기슭에 있습니다. 묘제는 음력 10월10일 지내고 있습니다. 묘소 바로 아래에 있는 재숙은 전천재(箭川齌)입니다.
경주崔氏 정무공파(佳巖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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