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陶窩)는 2파 동열의 후손으로 1759년 부친 삼락당(三樂堂) 최찬(崔瓚)과 모친 전주이씨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 7세에 십구사(十九史)를 익혔고, 논어를 50번 읽고 거의 외웠다고 합니다. 13세부터는 통감과 사서삼경을 읽었고 노우 정충필의 문하에 들어가 공부했습니다. 대산 이상정에게도 배웠는데 대산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다음과 같은 만시로 애도했습니다.
往往登門拜 諄諄荷禮奢 왕왕 문하에 올라 뵈면 과분하게 정성스레 맞아주셨지.
龜潭拜杖屨 松籟警吟哦 귀담에서 선생님을 뵈었을 땐 솔바람 사이로 노래를 읊조리셨지.
粹面知心廣 頤神祝壽遐 맑은 얼굴 넓으신 마음 정신을 기르시어 오래 사시라 빌었는데
斯文仍失祿 吾輩更依何 사문이 이윽고 복을 잃었으니 우리들 다시 무엇에 의지할까?
나이 34세인 1792년에 생원시에 입격했지만 입신에는 뜻이 없었습니다. 부모님 묘소 아래 작은 서재를 짓고 스스로 호를 ‘도와’라 하고, 명(銘)을 지었는데 그 내용은 “네 모습은 지극히 완고하고, 네 마음도 매우 비웠구나. 마땅히 너는 흙을 먹고 살아야 할 것"이었습니다. 아름답기로 이름난 연화산 아래에 백련서사를 짓고 일체의 명리와 득실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자연을 벗삼아 책 읽고 학동들을 가르치는 일에만 몰두했습니다. 역락재를 만들어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했는데 배울 것을 청하면 그 자질에 따라 가르쳤습니다. 그는 고매한 인품으로 많은 사람을 감동시키며 유풍을 진작시켰습니다.
도와는 빼어난 시와 저술을 많이 남겼는데 1900년에 증손자 현상(鉉祥)에 의해 편집·간행되었습니다. 권두에 최익현(崔益鉉)의 서문이 있습니다. 8권 4책의 목판본으로 국립중앙도서관, 성균관대학교 도서관, 한국학중앙연구원 등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권1·2에는 시 187수, 권3·4에는 서(書) 80편, 권5에는 잡저 8편, 찬 2편, 전(傳) 2편, 서(序) 13편, 권6에 기 9편, 발 4편, 잠 9편, 명 15편, 상량문 1편, 축문 6편, 권7에 제문 23편, 뇌(誄) 2편, 애사(哀辭) 2편, 묘지명 1편, 권8에 행장 6편과 부록으로 행장·묘갈명 등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잡저의 내범편저(內範篇著)에는 부녀자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규중의 규범이 될 만한 것을 모아 편집했는데, 당시 여성들의 교육자료로써 사료적 가치가 크다고 합니다.
학술적 논설로는 하락도설(河洛圖說) · 무극태극설(無極太極說) 등이 있습니다. 또 경주에 있는 계림김씨시조탄강유허비각의 기문을 수록하여 김알지의 탄생 설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