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완은 1889년 부친 최현식과 모친 풍산 류씨(류도휘의 녀)의 3남으로 태어났습니다.
1909년 안희제·남형우 등과 함께 비밀결사 대동청년당을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1910년 8월 경술국치로 국권이 완전 상실되자 청나라로 망명하여 중국과 국내를 오가며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1919년 3.1 운동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가했고, 형 최준이 보낸 그 당시 돈 2만원의 막대한 금액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군자금으로 전달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과 재무부 위원에 선임되었고, 임시정부 조사원으로도 활동했습니다.
최완은 동학 2대 교주 최시형의 장남이자 고려혁명당을 세운 최동희(崔東曦), 그리고 대동청년당과 조선노농공제회를 세운 박중화(朴重華)와 독립운동의 노선을 같이 하며 활동했습니다. 1920년 8월 대구에서 최동희를 만나 독립운동 방안을 논의하다가 체포된 적이 있고, 1923년 서울에서 혁청단(革淸團)이 결성되자 이에 입단하여 임원에 선출되기도 했습니다.
1926년 중국 상하이에 있던 중 '아버지가 위독하니 빨리 귀국하라'는 형 최준 이름으로 온 편지를 받고 귀국했는데, 이 편지는 일제 경주경찰서장이 만든 거짓 편지였습니다. 결국 일본 경찰의 계략에 빠져 체포되어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었습니다. 나중에 병으로 가출옥했지만 혹독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1927년 1월 순국했습니다.
1963년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에,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습니다.
경주崔氏 정무공파(佳巖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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