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충의당 상량문과 해석
충의당 상량문과 해석

충의당상량문(忠義堂上樑文) 

7대 조상 부조지위(不祧之位) 받들어 침묘(寢廟) 편안함 크게 도모하니, 백 년 후손의 계책에 복을 내려 다행히 건물 새로 지어짐을 보는구나. 마을에 빛이 나고 집안에는 기쁨이 감도네.

삼가 생각건대, 이 당() 주인은 정무공(貞武公) 사손(祀孫)이며, 용암처사(龍巖處士) 대통(大統)이시다. 입재(立齋) 문하에 수학하여 입신과 처신 방법 일찍 알았고, 제옹(霽翁) 집안 영향받아 친족을 화목하게 할 도리 평소에 익혔다. 충신(忠信)을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처럼 하니 누가 선대를 잘 이었다고 하지 않겠으며, 시례(詩禮)를 궁기(弓箕)로 삼았으니 진실로 긍구긍당(肯構肯堂)했다 할 만하다. 오직 저 서너 칸의 건물을 이미 20년 이상 경영하며 빈조(蘋藻)를 올려 정성스럽게 제사 지냈지만 자손들 차례대로 서 있기가 어려웠다. 비둘기처럼 집 짓는 데 무능하여 사당이 얼기설기 만들어졌으니, 누가 선부로(先父老)의 노고를 잇겠는가. 서까래는 썩고 담은 무너져 보는 사람 안타까워하고, 집은 작고 뜰은 좁아 마음 아프고 걱정스러웠다. 비로소 경인년(庚寅年, 1830) 중춘(仲春)에 이르러, 남쪽과 북쪽으로 새 터를 잡았다. 공사비용 헤아려 생각하니 힘이 부족한데 어찌 지나친 공사 하겠는가. 형편 따라 주선(周旋) 하지만 후손들 부담 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종중 어른들 힘든 일 마다하지 않았고, 먼저 간사(幹事) 맡을 사람 택해서 감독 일을 일임했다. 이에 사당이 수리되고, 제실(祭室) 공사 계속 이루어졌다. 왼손에 자를 잡고 오른손에 도끼 잡은 공장(工匠)들 즐겁게 일해 나아갔다. 서쪽에 따뜻한 방[燠室] 만들고 동쪽에 서늘한 곁방 만들어 들보 올리는 공정까지 마쳤다. 어찌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할 필요 있겠는가. 단지 제도(制度)의 치밀함 갖출 뿐이다. 진실로 대축(大祝)과 봉례(奉禮)의 집으로 합당하게 되니, 비로소 청사(廳事)가 넓은 것 깨닫는다. 다만 이 하옥(夏屋) 처음 지어졌을 때 의당 임금이 내려주신 화려한 편액 있었다. 몇 걸음 옮겨서 고쳐 지었으나 어찌 예전 것 그대로 두겠는가. 양지바른 곳에 네 칸 지었으니 아름다운 이름 새로 내려오기 바란다. 곧은 절개 당실(堂室)에 나타내어 주회옹(朱晦翁) 뜻 우러르고, 공경과 간략함[敬簡] 처마에 걸어 장흠부(張欽夫) 남긴 뜻 따른다.

정무공 뛰어난 기개 우뚝하고 나라 위한 충의(忠義) 밝게 빛나, 일월과 빛을 다퉈 악무목(岳武穆) 진심으로 나라에 보답한 마음에도 눈물 맺히게 한다. 춘추(春秋)의 존양(尊攘) 강론하여 맹자의 물고기 버리고 웅장 취함[舍魚取熊]을 얻는다. 태양이 붉은 해바라기 알아보니 자기 몸 버리며 절개에 목숨 바쳤고, 맑은 지조 빙벽(氷檗)에 힘쓰니 나약한 자 굳건하게 세우고, 완악한 자 방정하게 한다.

마땅한 그 성공을 말하니 어찌 이를 높이 내걸지 않겠는가.

은택은 5대 동안 시들지 않아 원차산(元次山)의 충성 샘과 함께 흐르고, 은혜는 온 집안에 더욱 미치어 범희문(范希文)의 의로운 집과 서로 나아간다. 서산(西山)의 고사리, 동해의 물로 필분(苾芬)을 양 기둥 사이에 올리고, 위씨의 동산, 도문(陶門)의 버들로 친척들 당() 위에서 기뻐하네. 나 또한 친족 일원이니 한마디 말 없을 수 있겠는가.

()()호덕(好德)강녕(康寧)은 홍범구주(洪範九疇) 오복의 순서이고, ()()()()()()은 주례(周禮) 육행(六行)의 조목이다. 친족의 돈독은 장공예(張公藝)가 인()을 백번 써서 올린 것에 있고, 가족 화목은 한위옹(韓魏翁)이 약속을 끝까지 지키는 데 있다. 이 미꾸라지 신음 같은 졸렬한 시구로 어찌 무지개 들보의 읊조림을 도울 수 있겠는가.

   들보를 동쪽으로 들어보세 抛樑東

 우뚝 솟은 천룡산(天龍山) 눈 앞에 펼쳐지네 矗矗龍岑指顧中

 많은 선비 길이길이 제사 지내던 곳 多士千秋禋享地

 푸르고 푸른 서원의 나무가 청풍을 일으키네 蒼蒼院樹起淸風

   들보를 서쪽으로 들어보 抛樑西

 신야는 넓고 멀어 높고도 낮네 莘野茫茫高又低

 논밭에서 효효하게 요순을 즐기며 畎畝囂囂堯舜樂

 지금 사람과 살면서 옛사람을 상고하네 今人與處故人稽

   들보를 남쪽으로 들어보세 抛樑南

 구름이 옅어지니 산 빛 푸르구나 烟薄山光浮翠嵐

 상상하네, 그 당시 의병을 규합하여 想像當年糾義旅

 순원을 따라 구름 곁마 탄 것을 直隨巡遠駕雲驂

   들보를 북쪽으로 들어보세 抛樑北

 문수는 넘실넘실 멈추지 않네 汶水湯湯去不息

 단번에 세상 티끌 씻어내는 아침 비 넉넉하여 一洗塵埃朝雨餘

 얼음같이 맑고 옥같이 깨끗한 마음 여기에서 얻었네 氷淸玉潔於斯得

   들보를 위쪽으로 들어보세 抛樑上

 충성이 해와 별 꿰뚫고 광채를 뿜네. 忠貫日星光彩放

 다시 선명한 무지개 북두와 견우를 가로질러 更有晴虹橫斗牛

 우뚝한 의기 높은 산을 우러르네. 崢嶸義氣高山仰

   들보를 아래쪽으로 들어보세 抛樑下

 버드나무 회화나무 우거진 외진 마을 뽕나무 들판이네 柳槐深巷桑林野

 충성과 효도를 공부하니 課忠責孝這工夫

 맑은 샘 그치지 않음을 볼 것이네 試看淸泉流不舍

 엎드려 바라옵건대, 상량 후에 자손 더욱 번창하고 복록 오랫동안 이어지며, 제기[俎豆]가 백 세에 걸쳐 올라와 제사 크게 밝아지고, 화수(花樹)가 한자리에 모여 집안 화목하게 하소서. 

 

*위 상량문은 근암 최옥(수운 최제우 선생의 부친)이 썼다. 

 

 忠義堂上樑文 

奉七世不祧之位丕圖寢廟之孔安貽百年裕後之謨幸見棟宇之新建光生閭里喜動門闌竊惟堂之主人貞武先生之祀孫龍巖處士之洪緖薰陶於立齋門下早知立身行己之方擩染於霽翁家中素習敦親睦族之道忠信是茶飯孰不曰善繼善述乎詩禮爲弓箕誠可謂肯構肯堂者惟彼三數間寢屋已多二十年經營薦蘋藻而駿奔難容衆子孫序立擬結構而鳩拙孰繼先父老勤勞榱桷朽而牆壁頹見者嗟惜堂宇狹而庭除窄心焉隱憂始洎庚寅仲春爰卜壬丙新址量功費而商確其奈力詘擧贏隨形勢而周旋難免頭會箕斂其在重宗之地不憚筋力之勞先擇幹事之人一任監董之役迨玆廟貌之修葺迺有祭室之續成左執尋引右執斧斤喜工匠之趨事西有燠室東有凉厦見樑欐之訖功何必壯麗奢侈惟取制度之密允合大祝奉禮始覺廳事之寬顧此夏屋之初成宜有燕寢之華扁移數步而改搆詎舊貫之仍存營四架而面陽庶嘉名之肇錫表直節於堂室竊仰朱晦翁餘規揭敬簡於軒楣聿追張欽夫遺意念吾祖氣烈卓爾爲國家忠義皎然爭日月輝光濕了岳武穆之盡心報國講春秋尊攘做得鄒夫子之舍魚取熊識太陽於丹葵所以忘身殉節勵淸操於氷檗足令立懦廉頑屬當告厥成功盍將以是高揭澤不斬於五世元次山之忠泉並流恩彌隆於一家范希文之義宅相將西山薇東海水奠苾芬於兩楹間韋園花陶門柳悅親戚於一堂上吾亦諸親之忝列可無一言之獻規壽富好德康寧箕疇九五福之序孝友睦婣任卹周禮二六行之條族姓敦和張公藝之書字百忍閨門肅穆韓魏翁之約束壹遵玆將鰌吟之拙句庸助虹樑之呼邪

抛樑東矗矗龍岑指顧中多士千秋禋享地蒼蒼院樹起淸風

抛樑西莘野茫茫高又低畎畝囂囂堯舜樂今人與處故人稽

抛樑南烟薄山光浮翠嵐想像當年糾義旅直隨巡遠駕雲驂

抛樑北汶水湯湯去不息一洗塵埃朝雨餘氷淸玉潔於斯得

抛樑上忠貫日星光彩放更有晴虹橫斗牛崢嶸義氣高山仰

抛樑下柳槐深巷桑林野課忠責孝這工夫試看淸泉流不舍

伏願上樑之後子孫式蕃福祿綿遠薦俎豆於百世祀事孔明集花樹於一場家道雍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