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백당(慕白堂)은 1파 동윤의 후손으로, 자는 대백(大伯) 또는 영기(永基)입니다.
정무공으로부터는 현손(玄孫, 고손자)이 됩니다. 경종 3년 별시 무과에 급제하여 북쪽 변방과 남쪽 해안의 수비를 맡았습니다. 충청도 해미현감을 지냈고, 명천도호부사를 비롯해 세 고을의 수령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모백당을 명천공(明川公)이라 더 많이 부르게 되었습니다. 영조 임금 때 일어난 이인좌의 난을 평정하는 데 크게 공을 세워 분무공원종이등(舊武功原從二等)으로 공신이 되었습니다,
만년에 동지중추부사(종 2품)의 높은 벼슬로 기로소(耆老所)에 들었습니다. 기로소는 70세 이상의 2품 고관들을 우대하기 위해 궁궐 안에 설치된 관청입니다. 임금님이 연회를 베풀고 경험많은 고관들로부터 허심탄회한 의견을 듣는 곳이었습니다. 고관으로 기로소에 든다는 것은 대단히 명예로운 일이었습니다.
모백당은 한평생 말 한 필로 다닐 정도로 청렴했으며 위로 3대가 증직 받았습니다. 만년에 경주 내남면 노곡리 미역골을 하사받아 귀향했는데 이곳에 임천정을 짓고 시가를 읊으며 지냈습니다.
모백당의 업적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무공에 관련된 사료들을 한 곳에 모은 일입니다. 당시까지의 자료를 모두 모아 4권의 목판본으로 간행했는데, 정무공최선생실기(貞武公崔先生實記)가 그것입니다. 목판을 제작하기 위해 최고급 고욤나무 목재를 먼곳으로부터 운반해 왔다고 합니다. 정무공실기는 그뒤 내용을 추가하여 5권의 잠와선생실기(潛窩先生實記)로 간행되었습니다.
경주崔氏 정무공파(佳巖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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